그림으로 진단하고 그림으로 치유하다
세월호 참사의 상처 치유하는 미술치료클리닉 김선현 교수
임상미술치료란 미술과 의술이 접목된 새로운 형태의 치료법으로서 미술활동을 통하여 환자의 심신 상태를 평가하기도 하고 질병의 치료나 증상의 호전을 도모하는 치료법이다. 국내 미술치료 분야의 독보적 전문가인 김선현 차의과학대 미술치료대학원 원장을 만나 마음의 상처를 보듬는 미술치료에 관한 궁금증과 조언을 들어보았다.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그린 '내면의 바다'
지난 28일, 안산 단원고 3학년 5?6교시 수업 주제는 '바다'였다. CHA(차)의과학대학 미술치료대학원 김선현 교수(차의과학대학교 미술치료대학원장)와 대학원생들로 구성된 '미술치료팀'은 학생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겪은 '내면의 바다'를 가감 없이 표출해내도록 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그림은 솔직했어요. 후배들을 잃은 슬픔과 분노, 우울감과 상실감, 그리움과 애도라는 복잡한 감정이 묻어나 있었어요." 김 교수는 아이들의 그림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설명했다.
학문적 호기심에서 시작한 임상미술치료
학부에서 도예를 전공한 김 교수는 미술을 통해 우울증이 사라진 사례들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임상미술치료에 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지금의 미술치료 전문의가 된 계기라 했다. 그녀는 '그림으로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으니 의사의 진료는 필요 없다'는 당시의 지배적이던 미술치료계 생각과는 달랐다. 미술치료도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만큼 당연히 의학적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김 교수는 미술치료에 의학적 전문성을 더하기 위해 차의과학대학 대체의학센터에서 세계 최초로 펠로우(전임의) 과정을 이수했다. 미술치료 앞에 '임상'이라는 말을 넣은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마음의 상처를 안은 사람들을 위하여
그동안 김 교수팀은 2003년부터 성폭력 피해 환자, 천안함 사건 유족, 연평도 포격 피해 주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소방 고가사다리차 추락 사고 목격 어린이, 구제역 살처분 참여 군인과 공무원, 동일본 대지진 피해 일본인, 서울시 소방공무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미술치료를 적용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최근에는 전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한 세월호 사건의 사고 학생 심리치료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중이다.
세월호 참사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을 위한 미술치료에 앞장서
김 교수팀은 현재 세월호 참사로 형제·자매를 잃은 학생들을 위해 매일 40명씩을 투입 그림 그리기, 점토 만들기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바다를 한없이 바라보는 부모, 심해로 빨려 들어가는 세월호, 구조를 기다리는 마지막 손길, 과장되게 표현된 어른들의 미덥지 못한 입, 아이들을 하늘로 데려가는 천사 등…. 아이들의 그림을 통해 당시의 마음을 읽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 세월호와 선장을 붉은색 'x' 표로 표시한 자화상은 자신의 불행을 극대화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거나 싫은 상황을 자연스럽게 그림으로 표현하며 심리적 고통을 극복하고 일상으로 복귀하려는 노력인 셈"이라고 수업을 설명했다. 아직까지 상당수 학생은 상실감, 의욕상실, 슬픔 등 심리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특히 아동·청소년기의 외상 경험이나 대리 외상은 적절한 시기에 치료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정신건강이 취약한 상태로 성장해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반응은 예상을 뛰어 넘었다.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지요. '재미있다', '좋았다', '제대로 풀 수 있었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김교수는 학생들이 내면에 쌓여 있는 불안한 감정들을 그림으로 그려 내면서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분위기라며 더불어 학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정 표현 통로가 막혀 있는 교사들의 치료도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0대들을 위한 미술치료 에세이 출간
얼마 전에는 다년간의 임상 결과 경험을 토대로 10대들을 위한 미술치료 에세이도 출간했다. "<그려요 내 마음, 그래요 내 마음>은 그림을 통해 10대들의 마음을 진단하고 명화를 통해 그 상처를 치유하는데 목적이 있어요." 청소년들이 여러 가지 상황에 자신의 고민을 대입해 보고 따뜻한 조언을 얻길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었단다. "클리닉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가장 안타까운 건 치료 시기에요.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상태가 심각해져야만 병원에 데려오시거든요. 이 책이 아이들의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부모님들이 그 마음을 잘 헤아리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크고 작은 사건들의 최전선에서 본인의 몫을 다하고 있는 그녀. 그녀는 오늘도 색연필과 도화지를 들고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을 향해 기꺼이 발걸음을 내딛는다.
▲ 영원한 바다
펜으로 그린 인물은 생존자를 나타내고 오일파스텔을 이용하여 진하게 표현한 것은 세월호 사건 실종자, 사망자를 나타낸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함께 동아리 활동을 통해 즐겁게 노래하였던 추억들을 마이크를 이용하여 상징적으로 나타냈다. 마이크는 상징적으로 사건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자 하는 희망의 메시지로도 볼 수 있다
▲ 나 아직 살아있는데…
화면의 중심에서 정면을 응시하는 듯이 표현된 눈동자는 절망적 상황에서 외부세계에 도움을 요청하는 통로이다. 동시에 세월호 피해자들이 침몰상황에서 가졌을 극도의 불안과 슬픔의 감정을 표현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배경의 바다가 이미 푸른빛을 잃고 갈색, 검정색으로 변한 것을 통하여 이미 두려움과 어둠이 엄습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물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어두운 바다의 모습을 색과 진한 필압을 통해 표현했다. 태아가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의 물속에 있는 환경과 세월호 사건을 빗대어 나타냈다. 세월호 침몰 사건 이전에는 '물'을 모성, 따뜻함, 편안함을 상징한다고 생각했으나, 사건 이후 '물'은 공포, 두려움, 미지의 세계, 죽음의 이미지로 변질되었다.
▲ 다들 어디로 가셨나요?
화면의 중심부에 그려 넣은 검정색의 물음표는 하루아침에 세월호 침몰로 인해 사라져버린 학생들의 생명과 꿈, 희망에 대한 허무, 분노를 의미하는 상징으로 볼 수 있다. 그림을 그린 후 글씨와 그림을 문지르는 기법을 사용하여 희미해져가는 희망, 불투명한 생존 여부에 대한 불안감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 차병원보 2014. 6월호 -